민순철
閔順哲1895. 5. 24 ~ 1954. 7.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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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9) 1895년 5월 2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와룡면(臥龍面) 이하리(伊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25세였으며, 목수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임동면(臨東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에서는 임동면·임하면(臨河面)·길안면(吉安面)·일직면(一直面)에서 만세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임동면 시위는 3월 3월에 열린 고종 장례식에 참석하였던 류동시(柳東蓍)가 돌아오면서 준비되기 시작하였다. 류동시는 협동학교(協東學校)의 류동태(柳東泰)와 이균호(李均鎬), 그리고 류연성(柳淵成)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5일 임동면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주도자들이 모여 거사일을 3월 21일 편항시장 장날로 정하였다. 거사일인 3월 21일 오후에 들어 편항시장에서 기독교인 10여 명이 먼저 독립만세를 불렀다. 오후 2시쯤 10여 명의 주도자들이 시장에 들어와 독립선언식을 가졌다. 이후 만세시위가 본격화되었는데, 이때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적극 가담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임동면 경찰관주재소로 들어가 무기를 빼앗고 서류들을 파기하였으며, 순사와 순사보를 구타하였다. 오후 5시경에는 임동면사무소로 몰려가 건물과 집기를 부수는데 앞장섰다. 시위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후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안동경찰서로부터 급파된 순사부장 1명과 일본군 수비대 군인 8명이 도착하여 대대적으로 주도자와 적극 가담자 색출과 검거에 나섰는데, 이때 붙잡혔다. 1919년 6월 2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형량이 가중된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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