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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숙

閔丙肅

1873. 6. 15 ~ 191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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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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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洪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홍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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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홍천군 동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3년 6월 15일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동면(東面) 성수리(城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강원도 홍천군 동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헌병에게 희생되었다. 1919년 3월 3일, 서울에서 고종(高宗)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원도 홍천군 동면에서는 3월 말부터 민씨 가문을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는데, 이때 적극 주도하였다. 조카 민준기(閔駿基)와 함께 마을 서당 교사 민두식(閔斗植)의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며 만세시위를 추진하였고, 속초리(束草里)의 허혁(許爀)과도 뜻을 모았다. 동면 내 삼현리(三峴里)·방량리(方良里)·개운리(開雲里)·월운리(月雲里)·후동리(後洞里)·덕치리(德峙)·신봉리(新峯里) 등에도 주민을 동원하기 위한 연락을 취하였다. 그러던 중 4월 1일 홍천면(洪川面) 신장대리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소식을 듣고, 4월 2일 면 소재지인 속초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정하였다. 4월 2일 새벽부터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속초리로 몰려들었다. 성수리 길목에서는 홍천면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 시위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유의하였다. 마침 면장이 사촌형 민병선(閔丙善)였기 때문에 그를 통해 면사무소에 커다란 태극기를 내걸었다. 민병찬(閔丙讚)이 “대한독립, 우리 대한 만세”라고 선창하자 전 군중이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불렀고, 면장과 면서기도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오후, 시위대는 4월 1일에 일어난 홍천면 시위로 붙잡혀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홍천면에 있는 헌병분견소로 향할 계획이었다. 이때 면장 민병선이 나서 이미 오후이니 내일 아침에 다시 모여 가자고 회유하여 시위대는 저녁 무렵 해산하였다. 4월 3일 날이 밝자 동면 내 각 마을 주민들이 홍천면으로 가기 위해 다시 속초리로 모여들었다. 시위대가 출발하려 하자 홍천면 방면에서 일본 헌병과 수비대가 나타나 가로막았다. 그들은 홍천군청 직원 허경선(許慶善)·정광세(鄭光世)의 인도를 받으며 속초리에 들어섰다. 전날 동면 면사무소에서 시위대가 홍천면으로 가려 했으며 3일에 다시 모이기로 한 사실을 누군가가 홍천군청에 알렸던 것이다. 이윽고 면사무소에서 마주친 시위 주도자들과 일제 군경 사이에 격투가 벌어졌다. 이때 헌병 상등병 이케다(池田)와 총을 뺏으려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옆에 있던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형인 민병태(閔丙台)가 동생의 죽음에 격분하여 달려들었으나 역시 일본군의 총에 쓰려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얼마 후 사망하였다. 이 소식에 격분한 시위대는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해산하였고, 마을에서 수십 명이 붙잡혀갔다. 1965년 홍천읍 유지들이 동면 성수리에 ‘순국3·1열사문공휘병태병숙충혼비’를 세워 이들 형제의 애국혼과 희생을 기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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