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文學伊1898. 6. 1 ~ 1979. 5.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김천군 개령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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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98년 6월 1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개령면(開寧面) 동부동(東部洞, 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 문응학(文應學)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당시 농민이었다. 개령면 동부동에서 전개된 네 차례의 만세운동 가운데, 4월 4일의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독립만세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거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개령면 동부동의 주민들은 3월 24일 및 4월 3·4·6일 등 4차례에 걸쳐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4일 개령면에서는 개령공립보통학교 졸업식과 은창서(殷昌瑞) 집안의 혼인 잔치가 있었다.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참석자 김태연(金泰淵)·허철(許喆)·전종수(全琮洙)·최영돈(崔永敦) 등이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향해 조선독립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연설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다. 이에 찬동한 수많은 마을 사람들은 그날 저녁 유동산을 향해 시위대열을 이루어 행진하였다. 이 시위의 주도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일제 지배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 고장에서만 독립만세운동 거사가 없는 건 수치”라며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권고하였다. 이러한 독립운동 소식에 자극을 받아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동지들과 그 해 4월 3일과 4일 개령면 동부동 마을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4월 3일 밤 우준식(禹雋植)과 다른 동지가 먼저 마을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4일에는 홍득린(洪得麟)·문정환(文廷煥) 등과 함께 직접 마을 뒷산에 올라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결국 일제 당국의 탄압으로 시위는 중단되었고, 시위대가 해산되는 과정에서 다른 주도 인물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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