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초
文星超1887. 12. 30 ~ 1919. 4.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울산군 하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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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87년 12월 30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서리(西里, 현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평(南坪)이고, 호는 청록(靑鹿)이다. 1919년 4월 만세운동 당시 비밀결사인 병영청년회의 회원으로, 병영리(兵營里)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1919년 봄 서울에서 유학하던 병영청년회원들이 귀향하여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병영청년회에 전하였다. 이에 청년회 회원들과 논의하여 4월 4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지역 사회에서 신망이 있었으므로 자기 재산을 독립운동 준비를 위한 자금으로 희사하였다. 4월 3일 동지들과 함께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며 거사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거사일인 1919년 4월 4일 오전 9시 청년회원들과 함께 병영리에 위치한 사립일신학교(私立日新學校, 현 병영초등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교정에 집결하였다. 오전 11시 40분 축구공을 높이 차 올리는 신호에 모여든 시위 군중은 모두 준비한 태극기를 꺼내들고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힘껏 외쳤다. 이어 인근의 서리·동리(東里)·남외리(南外里)·산전리(山田里)를 돌면서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울산에서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일제 경찰과 일본군 수비대는 무력으로 주도 인물들을 검거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일제 군경의 검거를 피한 후 동지들과 연락을 취하여 이튿날 사립 일신학교에서 다시 거사하기로 계획하였다. 4월 5일 오후 3시 일신학교에 다시 집결한 시위 군중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시가지를 따라 하상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이 1,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급히 지원에 나선 울산의 일제 군경이 무력으로 진압하며 시위대를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시위 군중 다수가 부상을 입고 동지들이 붙잡혀 가자, 선두에 서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하상경찰주재소에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일제 군경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고, 엄준(嚴俊)·주사문(周士文)·김응룡(金應龍) 3명과 함께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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