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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출이

南出伊

1881. 10. 9 ~ 193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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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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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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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영덕군 창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81년 10월 9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경북 영덕군 창수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영덕 지역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8일 영해면(寧海面) 성내동(城內洞)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로부터 시작되었다. 영해면 북서쪽에 위치한 창수면의 삼계동(三溪洞)과 오촌동(梧村洞) 주민 10여 명도 영해장터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러나 신기동(新基洞)에 이르렀을 때 영해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는 너무 늦었다고 판단하고, 대신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신기동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과 협의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합세한 주민들은 다시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창수동으로 향하였다. 이튿날인 19일 오후 4시경에 200여 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수각(李壽珏)·권재형(權在亨)·이현우(李鉉祐)·이현설·이현석(李鉉奭)·박재복(朴載馥)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김재수(金在守)와 권덕명(權德明) 등은 커다란 태극기를 휘두르며 창수경찰관주재소 파괴를 명령하고 주재소를 파괴할 때마다 만세를 부르기도 하였다. 시위대는 주재소의 사무실, 객사, 주임 순사 숙사, 집기와 서류들을 파손시켰다. 오후 7시경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영해에 파견된 일본군 중 일부가 시위 진압을 위해 파견되었으나 그때는 이미 시위대가 해산한 후였다. 이후 일본 군경에 의해 만세시위 주도자 검거가 대대적으로 실시되어 여러 참여자와 함께 붙잡혔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 집행 방해, 상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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