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
南進祐1899. 11. 9 ~ 1933. 11.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안성군 양성면
- · 원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9년 11월 9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현 안성시) 양성면(陽城面) 덕봉리(德峰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과 원곡면(元谷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원곡면의 만세시위는 각 면의 시위 군중이 합류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과격해진 사례로, 1919년 3월 고종의 국장에 참례하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온 원곡면민 최은식(崔殷植)·이덕순(李德順)·이근수(李根洙)·홍창섭(洪昌燮) 등이 주도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1일 오후 8시경 원곡면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소재한 원곡면사무소(元谷面事務所) 앞에 주동자들을 비롯한 원곡면민 약 1,0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친 후 양성면 동항리(東恒里)로 향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등과 횃불을 들고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의 경계인 성은고개에 이르러 이유필이 시위 군중에게 “오늘밤 이렇게 회집한 것은 천운이니 양성경찰관주재소(陽城警察官駐在所)로 향하여 일본인 순사와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지 못할 것이 없다. 순사가 이에 응하면 가하거니와 만약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취할 수단이 있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였다. 최은식·이덕순·이근수·홍창섭 역시 “조선은 독립국이 될 터이므로 일본의 정책을 행하는 관청은 불필요한 고로 우리가 함께 원곡면·양성면 내에 있는 순사주재소·면사무소·우체국 등을 파괴할 것이다. 또한 일본인을 양성면 내에 거주케 할 필요가 없는 고로 일본인을 양성에서 쫓아내자”고 연설하였다. 시위 군중은 이에 찬동하고 양성면 동항리로 진입하였다. 같은 날 밤 9시 30분부터 양성면민 수백 명도 만세시위를 하기 위하여 양성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이곳에서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다가 9시 50분경에 해산하고 돌아가다가 성은고개를 넘어 오던 원곡면민과 회합하면서 시위 군중은 약 2,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시위 군중은 밤 10시경 다시 양성경찰관주재소에 가서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돌을 던지고 유리창을 부순 후 불을 질러 주재소와 순사 숙직실 각 1동 및 공동서류·물품·가구 등을 전부 소각하였다. 이후 양성우체국으로 가서 사무실과 실내 전화기·공용서류·물품·가구 등을 전부 파괴하고 금고를 파손하였다. 또한 안성과 통하는 전화선을 절단하여 연락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이어 일본인이 운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대금업자의 건물을 파손하고 불을 질렀다. 이후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공용서류와 물품을 파손한 후 소각하였다. 4월 2일 오전 4시경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에 위치한 원곡면사무소를 습격하여 불을 지르고 사무실 건물과 공용 서류와 물품 모두를 소각하였다. 이처럼 시위 군중과 함께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12월 4일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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