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홍
南朝洪1871. 3. 8 ~ 1959. 6.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8)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해면
- · 병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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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8) 1871년 3월 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병곡면(柄谷面) 각리동(角里洞, 현 각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의 영해면(寧海面) 성내동(城內洞)과 병곡면 병곡동(柄谷洞)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경북 영덕군 영해면의 만세시위는 병곡면·창수면(蒼水面)의 시위와 함께 경북 도내에서도 가장 격렬했던 시위였다. 만세시위를 위해 기독교와 유림 세력의 연합이 이루어졌으며, 만세시위의 발의와 세력 규합 과정에서는 이 지역의 기독교 조직이 큰 역할을 하였다. 1919년 3월 영덕군의 만세운동은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교회의 조사(助事)였던 김세영(金世榮)의 발의로 시작되었다. 그는 교회의 도움을 받아 미국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 새뮤얼 모펫(Samuel A. Moffet, 馬布三悅) 에 의해 세워진 평양신학교(平壤神學校, 현 장로회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도중에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유학을 단념한 채 귀향하여 만세시위를 기획하게 되었다. 만세운동 날짜는 영해면 장날인 3월 18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3월 13일 일제 경찰의 예비검속으로 김세영이 검거되자, 만세시위 준비는 낙평동 교회 구세군 참위 권태원(權泰源)과 병곡면 송천동 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들은 기독교 세력은 물론 지역 유림의 세력 규합에도 힘써, 영해면·병곡면·축산면·창수면 등지의 기독교도와 영덕 지방의 대표적 유림 5대 성씨, 즉 권씨·남씨·박씨·백씨·이씨 문중을 규합해 갔다. 3월 18일 영해면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군중 앞에서 시위 주도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군중들도 독립만세를 외치고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강압적으로 해산 명령을 내린 영해경찰관주재소의 순사들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어 영해공립보통학교(寧海公立普通學校, 현 영해초등학교), 영해공립심상소학교(寧海公立尋常小學校),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에 대한 파괴도 이어졌다. 이로 인해 영해경찰관주재소 건물은 지붕과 기둥, 그리고 각 방의 표찰만 남았을 뿐이며, 영해공립보통학교와 영해공립심상소학교 또한 지붕과 기둥 및 일부 토벽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일부 시위대는 병곡면으로 이동하여 병곡경찰관주재소와 병곡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이러한 만세시위 과정에서 정규하의 권유를 받아 함께 시위 행진을 하고 일제 기관과 시설 파괴에 가담하였다. 시위대 해산 이후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가 이루어지면서 다른 인물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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