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욱
姜炳旭1871. 5. 6 ~ 1952. 3.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9)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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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9) 1871년 5월 6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영순면(永順面) 이목리(梨木里)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국명(國明), 호는 왕산(住汕)이다. 성장 배경이나 가족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이강년(李康䄵)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개하여 1896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킨 적 있던 이강년이 1907년 3월 제천에서 다시 거의하자 뜻을 함께하고자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강년은 을미의병 당시 문경에서 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강제로 깎던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을 처단하는 등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같은 문중 사람 강내영(姜來永)과 함께 이강년 의병부대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해산된 원주진위대의 무기를 구해 군사를 일으켰다는 윤기영(尹基榮)의 소식을 들은 이강년은 곧바로 원주로 가서 의병부대와 함께 제천으로 진군하였다. 제천의 천남(泉南)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패시킨 의병부대는 영월 주천으로 이진하여 체제를 정비하였다. 40여 명의 부대장은 이강년을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으로 추대하였고, 이강년은 도총독장에 이만원(李萬源), 중군장에 김상태(金尙台)를 임명하는 등 의병부대를 정비하였다. 지도층으로서 의병부대를 이끌 장임직(將任職)과 참모부(參謀部)를 새로 단장하고, 실제로 종군하며 전투에 참가할 종사부(從事部)와 각 거주지에 머무르면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식량을 내어주는 등 간접적으로 의병을 지원하는 좌종사부(坐從事部)를 구성하였다. 이때 종사부에 소속되어 종사(從事)로서 충주성 전투 등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강년 연합 의병부대의 충주성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의병부대를 따라 이동하며 주로 충청·강원·경북 북부 일대의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제천을 근거지로 삼고 의병 항쟁을 전개하던 을미의병 때와는 달리, 일본 정규군을 상대하기 위해 마을 지리에 밝은 주민들의 협조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근거지를 옮겨가며 의병 항쟁을 계속하였다. 이강년이 1908년 6월 청풍 작성 전투에서 다친 뒤 체포되어 교수형으로 순국하자, 소백산 일대에서 항전을 계속하였다. 경술국치 이후에도 의병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1914년 5월 13일 오후 10시 30분경, 강원 영월 조제동(鳥啼洞)에서 충북 보은 출신의 구경조(具敬祖)·김병영과 함께 임중철(林仲鐵)의 집에 가서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압송되어 심리를 마치고 공판에 부쳐졌다. 같은 해 7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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