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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숙

文福淑

1901. 3. 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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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문복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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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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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상해독립단 통영원조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통영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1년 3월 8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금사리(錦絲里, 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사동)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대화정(大和町, 현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으로 이주하였고, 1917년 부산진일신여학교(釜山鎭日新女學校, 현 동래여자고등학교) 고등과를 제5회로 졸업하였다. 남편은 동래군 출신으로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양성봉(梁聖奉)이다. 졸업한 후에는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 진명유치원(進明幼稚園)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경상남도 통영군 부도정시장(敷島町市場, 현 통영중앙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9일 진평헌(陳平軒)과 이학이(李學伊)·허장완(許璋完) 등이 송정택(宋正宅)의 사랑방에 모여 거사를 논의하면서 통영군의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진평헌 등은 독립선언서를 대신해 「동포에게 격하노라(同胞에 檄하노라)」라는 격문을 만드는 한편, 평소 교회를 통해 교류하고 있던 진명유치원 교사들에게 연락해 태극기 등을 만들도록 부탁하였다. 이 연락을 받고 김순이(金順伊)·양성숙(梁聖淑) 등 동료들과 함께 태극기를 만들며 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일로 정한 3월 13일 새벽 산양면사무소(山陽面事務所)에 모여 격문을 등사하던 진평헌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에 다시 거사일을 3월 18일로 결정하고 전날 유금룡(兪今龍)·공상로(孔庠魯)·서상환(徐相懽) 등과 함께 박종한(朴鍾漢)의 집에 모여 시위 군중에게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제작하였다. 3월 18일 김순이·이봉철(李奉哲) 등과 함께 집집마다 선언서를 배포한 후, 통영경찰서 인근 신정시장(新町市場, 현 서호시장)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일제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이 시작되면서 현장에서 주도자로 붙잡혀 3월 21일 부산으로 이송되었다. 1919년 4월 2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9월 9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낼 목적으로 조직한 상해독립단 통영원조회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1920년대 초에는 부산으로 돌아와 부산여자청년회의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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