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平久
平久1912. 1. 1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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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912년 1월 16일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어랑면(漁郞面) 용강동(龍岡洞)에서 태어났다. 자료에서는 한자를 달리하는 노평구(盧平歐·盧平九)라는 이명이 확인된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한의사인 부친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막지는 않았다고 한다. 서울로 유학을 와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학생 시절 공산주의 사상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기독교인임을 자처하여 선을 그었다. 당시에는 정동교회·중앙교회·안동교회 등에 나아가 설교를 듣는 등 신앙생활을 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경성군 어랑에서 김승룡(金承龍)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1930년 2월 1일 경성의 어랑공립보통학교(漁郞公立普通學校)에서 학생 200여 명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고 독립운동의 기세를 일으킬 목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학생이 중심이 된 시위대는 손에 태극기를 들고 먹으로 쓴 ‘일본정부에 반대한다’, ‘일본제국주의 타도’ 등이 적힌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였다. 그러면서 일제 통치를 비난하는 선전문서를 배포하고, ‘광주학생운동 만세’, ‘약소민족해방 만세’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행진은 하남동(河南洞) 강변에서 장터와 봉강역(鳳岡驛)을 거쳐 보통학교까지 이어졌다. 학교 교사가 시위대를 제지하자 위력으로 물리치고 곤봉으로 학교 기물을 파괴하였다. 김승룡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나남경찰서로 압송되었다. 재판에 넘겨져 1930년 6월 9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동일한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 ‘요시찰인’으로 감시를 당하였고,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서울 도화동 토막촌에 들어가 빈민 어린이를 가르쳤다. 이 무렵 종로의 서점에서 『성서조선』을 보고 김교신(金敎臣)을 찾아가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김교신의 주선으로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의 제자인 쓰카모토 도라지(塚本虎二)와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 문하에서 10년간 무교회 신앙을 공부하였다. 1945년 귀국한 후 한국 무교회운동을 주도하였다. 1946년 『월간 성서연구』를 창간하여 1999년 12월까지 500호를 발간하였다. 1946년 5월부터 성서연구회를 개설하여 주말마다 종로 YMCA회관에서 집회를 주관하였다. 1975년 『김교신전집』 전6권을 간행하였다. 1997년부터 글을 모아 『노평구전집』을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2003년 9월 8일 사망하기 전까지 전집 16권을 발간하였고, 사후인 2011년 전17권이 완간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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