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준
朴達俊1894. 1. 10 ~ 1965. 3.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흥무관학교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합천 해인사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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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4년 1월 10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거창면(居昌面) 중동리(中洞里)에서 태어났다. 자라서 출가하여 경남 합천(陜川)의 해인사(海印寺) 승려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해인사는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대한 불교 30본산 중 대본산(大本山)으로 교세의 10분의 1이 넘었다. 해인사 승려로서 학림 학생들과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해인사 학림의 학생들에게 전달되자 학생들은 해인사 뒷산에서 여러 차례 비밀회합을 갖고 독립운동을 추진할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경남 지역의 각 사찰에 만세운동을 전파할 것을 결의하고, 사찰의 등사판을 이용해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준비를 마쳤다. 이때 박덕윤(朴德潤)·이덕진(李德進)·김장윤(金章允) 등과 함께 거창·안의(安義)·함양(咸陽)·산청(山淸)·남원(南原) 등지를 맡아 가던 중 일본 헌병대와 수비대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그 뒤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김봉률(金奉律)과 함께 귀국하여 다시 승려로 활동하였다. 1920년 9월 무렵 해인사에서 만세운동을 추진했던 김장윤·김경환(金景煥)·우민수(禹敏秀) 등과 함께 한국 내의 각 사찰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만주의 한족회 사판장(司判長) 최명수(崔明洙)에게 송달함으로써 독립운동을 원조하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달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加北面) 용암리(龍岩里) 김봉률의 집에서 남만주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소인의 영수증을 만들었다. 10월 상순부터 15일 무렵까지 김경환·우민수 등과 함께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금룡사(金龍寺)와 대승사(大承寺), 의성(義城) 고운사(孤雲寺), 예천(禮泉) 용문사(龍門寺), 상주(尙州) 내서면(內西面) 남장사(南長寺) 등을 찾아다니며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이처럼 국내 사찰을 무대로 군자금 징수 활동을 벌이던 중 일제 경찰에 다시 붙잡혔다. 1921년 5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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