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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제식

閔濟植

1868. 12. 7 ~ 1924.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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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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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禮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예산군 대술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868년 12월 7일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대술면(大述面) 산정리(山亭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예산군 대술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예산에서는 1919년 3월 3일 예산면(禮山面,현 예산읍)에서 윤칠영(尹七榮)의 주도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래 4월 초까지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대술면에서는 1919년 4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 간 주민들이 마을의 산 위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횃불만세시위는 야간에 산 위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일제 경찰이나 헌병이 진압에 나서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일제가 참여자들을 쉽게 식별하지 못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횃불은 야간에 멀리서도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시위의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에도 용이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횃불만세시위는 한 지역에서만 발생하지 않고, 대체로 인근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또는 연이어 발생하는 경향이 있었다. 3일 간 전개된 대술면의 횃불만세시위 역시 예산면·신암면(新岩面)·신양면(新陽面) 등 인근의 지역 주민들과 함께 동시에 전개되었다. 이때 4월 3일의 첫 횃불만세시위에 이어서 다음날인 4일 산정리의 주민들에게 전날에 이어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주민 약 30여 명과 함께 동리의 산 위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태극기를 높이 세운 뒤, 조선독립만세를 연달아 외쳤다. 이날 예산군에서는 대술면을 비롯하여 군내 18개소에서 동시적으로 횃불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만세시위 이후 이 지역으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고, 1919년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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