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학
閔載鶴1896. 9. 29 ~ 1922. 10.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96년 9월 29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송전리(松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3일의 고종황제(高宗皇帝)의 인산(因山)에 참여했던 도호의숙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 등은 서울 체류 중 3월 1일 탑골공원의 만세시위를 목도하고 귀향 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泰玩),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등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천의장터 장날인 1919년 4월 4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또한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 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하여 한 집에 한 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구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농기구를 지참한 후 다른 주민들과 함께 대호지면사무소 앞으로 모였다. 이 자리에서 도로 보수는 위장된 목적이며 실제 목적은 만세운동이니 동참하라는 면장 이인정의 연설을 들은 후 독립선언서를 받았다. 이에 공감하여 바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주도 인물들의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로 앞에 집결한 6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 대열을 갖추고,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워 행진하였다. 이때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면사무소부터 약 7km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시위대열이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시장에 나온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속속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4일 오후 4시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무렵 천의장터로 급파된 당진경찰서 순사들의 발포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과 함께 천의주재소로 달려갔다. 송재만, 남상은 등의 지휘에 따라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 날의 만세시위 직후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의 만세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검거 과정에서 붙잡혀 서산경찰서에 갇혔다. 1919년 10월 2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과 소요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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