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명
閔元明187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해주군 가좌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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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가좌면(茄佐面) 국봉리(菊峰里)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76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해주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해주에서의 만세시위는 3월 1일 남본정(南本町) 기독교 예배당에서 고종(高宗)에 대한 봉도식(奉悼式)과 독립선언서 봉독식(奉讀式)을 마치고, 만세삼창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해주 읍내와 해주군의 중부지역과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확산되었다. 3월 9일 석동면(席洞面) 서원리(書院里), 10일 해주 읍내와 서변면(西邊面), 12일 추화면(秋花面) 약현리(藥峴里) 청단(靑丹) 장터, 17일 청룡면(靑龍面) 영양리(迎陽里), 29일부터 4월 1일까지 해주 읍내 등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해주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가좌면 만세시위는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연합해 준비하였다. 벽성군(碧城郡) 가좌방(茄佐坊) 지역으로 1914년 해주군으로 편입된 가좌면은 철도를 통해 옹진군(甕津郡)과 연결되고, 장연군(長淵郡)과는 도로가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취야리(翠野里)는 면 소재지로 취야시장이 있었다. 4월 3일 오후 2시 600여 명의 군중이 가좌면 취야리의 취야시장으로 모였다. 이 때 서장관(徐壯觀)·최봉조(崔鳳祚)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날 5,000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기세가 오른 시위대는 가좌면사무소와 취야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시위대가 주재소에 다다르자 그 가운데 일부 인사가 주재소로 들어가서 전화선을 끊었다. 시위대를 향해 경찰들이 발포하기 시작하였고,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대항하였다. 시위대가 해산되는 과정에서는 총에 맞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날 서장관·최봉조·문윤모(文允模)·염준석(廉俊錫)·이용선(李龍善) 등 50여 명과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과 소요로 징역 2년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9월 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다시 “내가 독립만세를 부른 것은 합방 후 불만족한 바로,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히며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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