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업
文昌業187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장연군 후남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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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77년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후남면(候南面) 남호리(南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숙박업에 종사하였고, 4월 황해도 장연군 후남면 남호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장연군의 만세시위는 3월 11일 장연읍 장터에서 천도교인 200여 명이 모여 여현구(呂鉉九)·김치명(金致明)·강원보(姜元寶)·박영서(朴永瑞) 등의 주도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3월 16일 장날에도 300여 명이 장연읍 장터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장연군의 만세시위가 본격화된 것은 4월에 들어서였다. 4월 5일 속달면(速達面) 태탄리(苔灘里), 8일 후남면 남호리, 11일 장연읍과 남호리, 16일 용연면(龍淵面) 도경리(道景里), 18일 대구면(大救面) 송천리(松川里), 22일 해안면(海安面) 몽금포리(夢金浦里) 등 장연군의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확산되었다. 4월 8일 장연군의 남부에 위치한 후남면 남호리에서 수십 명의 군중이 불을 피우고 만세를 부르며 독립을 축하하는 환호성을 올린 후 해산하였다. 11일에는 남호리의 남창(南倉) 장날을 맞아 다시 만세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날 김원정(金元貞)·이명로(李明魯)·임응환(任應煥)·최상훈(崔相勳)·최운석(崔運錫)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1시경 장터에는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2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면서 평소 친일적 행동을 하던 면사무소의 직원들에게 독립선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면사무소 문을 부수고 들어가 면 서기를 구타하기도 하였다. 이때 만세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일자 미상일에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다시 “본인은 4천년 이래 조선나라의 민족으로서 원래부터 일본 민족이 아니다. 월조는 남쪽가지에 새 깃을 틀고 호마는 북풍을 좋아한다. 하물며 사람으로서 모국의 정신이 없을소냐”라고 항변하며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그 해 9월 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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