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선
姜明善1880. 7. 8 ~ 1944. 7.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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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80년 7월 8일 경기도 연천군(漣川郡) 미산면(嵋山面) 석장리(石墻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의병 전쟁에 참여할 당시에는 경기도 마전군(麻田郡) 서면(西面, 현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내곡(內谷)에 거주하였다. 마전의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는 등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전통 교육을 받았다. 러일전쟁 이후 황무지 개척권 요구 등을 시작으로 본격화한 일제의 침략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1907년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켰다. 이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차관정치를 실시하였고, 부속 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인 시위대와 진위대를 해산하였다. 일제에 의한 강제 군대해산은 의병 전쟁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대한제국군 특무정교 출신의 박종한(朴宗漢)을 의병장으로 하는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주로 경기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였는데, 경기도의 허위(許蔿), 강원도의 이인영(李麟榮)·민긍호(閔肯鎬), 충청도의 이강년(李康䄵) 등이 중심이 되어 13도창의군을 창설하자 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하지만 13도창의군이 추진한 서울진공작전은 의병부대 간 연락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군의 개별적인 공격을 받은 데다 총대장인 이인영이 부친상을 당하여 문경으로 내려가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서울진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허위를 중심으로 김수민(金秀敏)·김응두(金應斗)·이은찬(李殷瓚)·박종한 등이 새롭게 편성한 임진강의병연합부대(臨津江義兵聯合部隊)에서 연합 의병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지역은 장단(長湍)·마전(麻田) 등지였으며,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8년 2월 중에는 박종한 의병부대 지휘부와 함께 각 부대를 10여 명으로 재편성하여 장단과 마전 일대에서 서구식 소총을 휴대하고 군자금 모집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중간관리자나 일진회 등 친일 활동을 전개하던 인물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마전 미현(微峴)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민으로부터 6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고, 마전 서면에서는 마름이었던 최씨 집에서 곡물 100석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일본군에 붙잡힌 후 1908년 9월 29일 경성공소원에서 마전·장단 일대에서 활동하던 의병 6명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스기무라(杉村逸樓) 검사가 입회하여 심리 판결한 결과 형법대전 제593조 제3항에 해당하며 이미 재물을 획득하였다고 하여 동조 본항 전단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점이 있어 형법대전 제125조에 따라 2등 경감하여 징역 15년 형을 선고 판결하였다. 이에 불복하고 상고하였으나 1908년 11월 10일 대심원에서 젠쇼 지로(膳鉦次郞) 검사의 의결을 들어 민·형 소송규칙 제42조·제33조 전단에 의하여 이른바 내란죄로 15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심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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