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백룡
文白龍1897. 8. 21 ~ 1974. 5.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897년 8월 21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사곡면(寺谷松) 유룡리(油龍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으로 문매문(文梅文)·문순서(文順西)·문순유(文順酉) 등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石松里)에 거주하는 이기한(李綺漢)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유림으로 평소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19년 3월 1일 이후 각지에서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곧바로 그 취지에 찬동하여 자신의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기한은 4월 1일 석송리 주민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만세운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날 이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이병억(李秉億)·이동안(李東案)·정재철(鄭在喆)·장기현(張基鉉) 등 수십 명의 주민들이 함께 참가하였다. 만세시위 대열은 15리길을 행진하여 내촌리(內村里)를 경유, 면사무소가 있는 광정리(廣亭里)로 향하였다. 만세시위 대열이 광정리에 도착했을 때 참가자는 800여 명이 넘었다. 이들은 일본인 거주지와 정미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광정리의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였다. 광정리 만세시위에 대한 보고를 받은 공주경찰서는 만세시위의 진압을 위해 순사 기하라(木原新次郞)·요코야마(橫山逸二)·순사보 이근남(李近南)·헌병군조(憲兵軍曹)·나카세이(中聖美吉)에게 병졸 5명을 인솔케 하여 광정리 경찰주재소로 급파하였다. 오후 4시 경 이들 진압 병력 차량이 광정리를 향해 김원일金(元日)이 경영하는 석송리의 주막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 광정리의 만세시위에서 돌아와 주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이동안·노규현(盧奎鉉)·정화순(鄭化順)·정재철·김정쇠(金正釗)·김정길(金鼎吉)·장기현 등의 주민들과 함께 차량의 진행을 가로막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착검한 헌병군조 나카세이와 순사 기하라 및 요코야마 등이 하차하여 이들을 체포하려고 하였다. 이때 노규현·정화순·장기현· 정재철과 함께 기하라 순사의 앞뒤 좌우에서 떠밀고, 입으로 물어뜯으며 저항하고 다른 체포자의 포승줄을 풀어주려 하는 등 일제 경찰의 시위자 체포를 적극적으로 저지하였다. 이에 당황한 일제 경찰은 발포하여 저항하는 시위자들을 제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상림(李相霖)이 일제 경찰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하였고, 이동안·정재철·정화순·장기현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에도 정안면의 만세운동은 이기한을 중심으로 3일까지 지속되었다. 1919년 9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항소하였다. 같은 해 11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소요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으나 형량은 동일한 징역 10월(미결 구류 일수 중 1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