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식
文琪植1898. 4. 28 ~ 1970. 3.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구만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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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98년 4월 28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구만면(九萬面) 효락리(孝洛里)에서 태어났다. 문태룡(文泰龍)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구만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고성군에서는 3월 20일 구만면·회화면(會華面)을 비롯한 인근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구만면의 청년들과 동지들은 고성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간략하게 요약한 독립선언서를 필사해 비밀리에 12개의 마을에 전달하였다. 의거일로 정한 3월 20일은 고성의 동북지역 7개면, 창원(昌原)과 함안(咸安)의 일부 면과 인접해 있는 배둔장터의 장날이었다. 나팔소리를 신호로 구만면을 관통하는 국천(菊川) 모래사장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회화면으로도 사람을 보내어 의거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3월 20일 오후 1시 구만면의 중앙부에서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를 신호로 하여 국천 모래사장으로 나아갔다. 만세시위를 주도하는 인물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개천리(介川里)·마암리(馬岩里) 주민 등 5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이 정보를 입수한 고성 헌병분견소는 고성에 주재하는 헌병과 경찰관을 동원하여 완전무장한 채 시위대를 도중에서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위군중은 나팔을 불어대며 제지선을 뚫고 10리쯤 떨어진 회화면 배둔장터에 도착하였다. 배둔장터에는 전날 밤 시장에 집결해 만세시위를 벌이자는 연락을 받은 회화면 지역 주민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구만면과 회화면 주민이 합세하면서 시위대의 인원은 700~800명으로 늘어났다. 이날 시위군중과 함께 배둔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한 후 구만면으로 돌아왔다. 이후 다시 시위 군중들과 함께 구만면사무소로 이동해, 「한인관리퇴직권고문(韓人官吏退職勸告文)」을 정문에 부착하고 해산하였다. 당일 현장에서 주도 인물 검거에 실패한 일본 헌병대가 일본 재향군인의 협력을 얻어 주도 인물 색출과 검거에 나섰고, 결국 그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24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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