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孝鍵
孝鍵188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광제청년단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郡) 구곡면(九曲面) 연삼동(延三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24년 당시 48세로 188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평남 의주군(義州郡)에서 대한광제청년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음)12월경 평남 의주군에서 장유건(張維健)의 권유에 응해 대한광제청년단(大韓廣濟靑年團)에서 가입하였다. 대한광제청년단은 1919년 6월 오동진(吳東振)·윤하진(尹河振)·장덕진(張德振) 등이 중국 콴뎬현(寬甸縣)에서 일제 기관 파괴와 친일주구 처단, 군자금 모금을 목적으로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1920년 (음)3월경 의주군 광평면(廣坪面) 청수동(淸水洞) 율곡(栗谷)에서 대한광제청년단 총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지방총무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20년 7월경 최겸순(崔謙純)이 일제 경찰에 붙잡히자 몸을 숨긴 후 중국 콴뎬현으로 이동하였다. 콴뎬현에 체류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면감 임명장과 『독립신문』, 독판부로부터 받은 면 협의원의 임명장, 재산가 조사표를 최효진(崔孝鎭)에게 송부하였다. 1921년 (음)1월 말경 삭주군에 잠입하여 최효진에게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김성서(金成瑞)·김윤봉(金允鳳)에게 인구세와 구국금 영수증을 교부하였다. 1921년 2월경에는 콴뎬현 부근에 거주하는 삭주군 출신들로부터 의연금을 모금하였다. 1921년 3월경 평북 독판대리 김승만(金承萬)이 삭주군감으로 추천하여 사령서를 받았고, 8월경 임시정부로부터 군감 임명장을 받았다. 삭주군에서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해 인구세와 구국금 수백 원을 모금하였다. 1921년 12월경 임시정부 재무부로부터 독립공채권 5장을 받아, 남서면(南西面)의 김학원(金鶴元)에게 1장을 교부하는 등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3월 초부터 1924년 1월 말까지 콴뎬현의 사숙(私塾) 교사로 활동하며 교육활동에 힘을 기울이던 중, 일본 경찰의 회유공작에 의하여 귀국 후 붙잡혔다. 1924년 5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함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년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1924년 8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선웅⋮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