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學洛
學洛1895 ~ 1922. 5.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대한독립군비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파도면(波道面) 동호리(東湖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5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김택률(金澤律)이다. 1921년 5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을 당시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바이현(長白縣) 장백부(長白府) 계인면(契仁面) 대사동(大寺洞)에 거주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8월 20일 「임시지방교통사무장정」을 공포하여 우편 사무를 위한 중요 거점에 임시지방교통사무국을 설치하였다. 이는 독립운동 세력과 일반 행정조직 사이에 철도와 통신, 해운국을 두고 사람과 자금, 정보를 연결하는 비밀 연락선을 담당하는 기구였다. 이때, 임시정부 함경남도 교통사무국의 통신원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함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도 가입하여 단원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도 함께 진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독립군비단은 함경도와 마주한 중국 창바이현에서 조직된 항일무장단체로, 임시정부의 지원 아래 만주와 국내의 여러 지역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1921년 3월 임시정부로부터 김정익(金鼎益) 등 31명에게 함경남도 지역 「교통지국장 및 참사(參事) 임명장」을 송달할 것을 명령받고, 교통국 통신원 김인식(金仁植) 등과 함께 국내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3월 4일 김인식이 북청군(北靑郡)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3월 18일 함경남도 단천군 수하면(水下面) 중평리(仲坪里)에 거주하는 밀정 심익하(沈翊河)의 집을 습격하고 군자금을 모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재 돈이 없다고 버티는 심익하로부터 후일 군자금을 내놓겠다는 약조를 받아낸 후, 단천군 이우면(利牛面)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심익하와 자위단(自衛團)이 이러한 사실을 상농(上農) 주재소에 즉시 신고하였고, 상농주재소 경찰관들은 고성(古城)주재소 경관대와 추격조를 편성하고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우면 하전리(荷田里)의 오주호(吳周鎬)의 집에 은신하고 있음을 알아챈 일제 경관대 추격조는 3월 19일 오전 2시경 포위하고 체포에 나섰다. 이에 총격전과 육탄전을 벌이며 일제 경관대 추격조와 항전하였지만, 중상을 입고 붙잡혔다. 1922년 5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받고 판결의 무리함을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이에 일본인 검사에게 고문을 당한 끝에 판결 3일 만인 1922년 5월 5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양인선⋮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