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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浩洛

浩洛

1880. 12. 30 ~ 1926.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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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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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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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유시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80년 12월 30일 경상북도 안동부(安東府) 서후면(西後面) 금계리(金溪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병락(金柄洛)을 사용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유시연(柳時淵) 의병부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안동지역은 정치적·학문적으로 남인(南人)과 퇴계(退溪) 학통이란 구심점의 영향으로 공동체적 의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지역 양반들은 경제적으로 중소 지주로서 지주계급 사이의 분화와 갈등이 적었으며, 사회적으로 서로 통혼을 유지하면서 공동운명체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관계를 기반으로 안동지역에서 을미의병을 주도한 인물은 퇴계 이황(李滉)을 종장으로 삼았던 유치명(柳致明)의 문인 중에서 다수 배출되었다. 안동지역 유림들은 1881년 만인소(萬人疏)를 올리며 전국적인 척사운동을 주도해 갔으며, 1894년 6월 일본군에 의한 ‘경복궁 침범사건(갑오변란)’을 계기로 이를 더욱 격화시켰다. 갑오변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7월 중순에 항일의병의 효시로 알려진 서상철(徐相轍) 의병이 안동에서 일어났다. 이후 안동지역의 유림들은 1895년 을미사변과 이어 일어난 단발령의 시행에 즉각적으로 의병을 조직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유시연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을미의병에 참여하여 권세연(權世淵)의 부하로서 활동하였고, 1905년 이후 의병을 소집하여 일월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의 동북부에서 유격전을 벌였던 의병장이었다. 유시연 의병부대에서 종군하면서 1906년 10월 26일 동료의병 50~60명과 함께 경북 예안군(禮安郡)으로 가서 예안분파소를 습격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07년 5월 4일 경상북도재판소에서 내란 혐의로 유형 10년을 받았다. 전라남도 지도군(智島郡) 고군산(古群山)으로 배소(配所)가 정해져 그곳에서 고초를 겪다가, 1907년 12월 18일 사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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