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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록

金洪錄

189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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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홍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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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성천(成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성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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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숭의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 삼덕면(三德面) 쌍림리(雙林里) 출신이다. 1920년 일제 측의 기록에 따르면 26세로 1893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비밀결사 숭의단에 가입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만주 류허시엔(柳河縣)에서 활동하던 최병갑(崔炳甲)이 1919년 11월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성천군에 들어와 박돈수(朴敦洙)·김영란(金永蘭) 등과 함께 기독교 감리회 신자와 농민 등 10여 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비밀결사 숭의단(崇義團)을 조직하였다. 숭의단은 군자금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이때 서당 한문교사와 면서기 경력을 활용하여 단인(團印)을 조각하였다. 1920년 2월 성천군 이덕면(二德面) 면사무소의 등사판으로 독립운동 자금 수령증을 인쇄하였다. 김영란과 함께 주변 부호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을 자처하며 독립운동 자금 모집 방안을 모색하였다. 3월 6일 천성면 천성리(天成里)에 거주하는 부호 최병황(崔炳璜)에게 독립운동 자금 2,000엔(円)을 요구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150엔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면서 수일 내 다시 방문할 것이니 요구한 자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3월 16일 다시 권총을 휴대하고 최병황의 집을 방문하여 500엔을 받았으며, 4월 2일에도 최병황으로부터 300엔을 모집하였다. 3월 7일에는 박돈수와 함께 삼덕면 쌍림리 부호 김덕팔(金德八)을 찾아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제공한다고 하면서 자금 1,000엔을 요구하였다. 김덕팔이 돈이 없다고 하자, 수일 내 다시 찾아올 것이니 돈을 미리 마련해 두라고 지시하였다. 4월 8일 김덕팔의 집을 다시 찾아가 독립운동 자금으로 300엔을 받았다. 최병갑과 함께 그동안 모금한 독립운동 자금 1,600엔을 박돈수에게 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할 것을 지시하였다. 박돈수가 4월 중순경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평양을 출발하였으나, 검문이 강화되자 이를 포기하고 성천군으로 돌아왔다. 1920년 5월 16일 박돈수가 평양에서 양덕(陽德)경찰서 소속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숭의단 조직도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단원들의 체포 소식을 접하고 함경남도 문천군(文川郡) 운림면(雲林面) 발령산(鉢嶺山)으로 피신한 후 서당교사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1921년 3월 17일 동향을 끝까지 추적하였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6월 1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공갈, 강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7년 5월 19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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