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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洪奎

洪奎

1888. 5. 2 ~ 195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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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洪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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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金堤)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태을교
  • · 보화교
  • · 보천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88년 5월 2일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만경면(萬頃面) 대동리(大東里)에서 태어났다. 1917년 차경석(車京石)을 교주로 하는 태을교(太乙敎, 후에 보화교(普化敎), 보천교(普天敎)로 개칭)에 입교하여 활동하였다. 태을교는 1919년 만세운동 이후 급격히 교세가 늘어났다. 24방주제(方主制)로 운영되던 태을교는 교세가 늘면서 1919년 10월 4일 60방주제로 확대되었다. 태을교의 교세 신장은 태을교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대대적인 탄압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탄압의 빌미는 1924년에 교주 차경석을 중심으로 새로운 왕조가 개창된다는 갑자등극설(甲子登極說)의 유포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국권 회복을 꾀하면서 해외의 독립운동단체에 자금을 제공하는 불온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1919년 11월 전북 정읍군 입암면(笠岩面) 접지리(接芝里)에 있는 문정삼(文正三)의 방에서 태을교인들과 협의한 끝에 치성금으로 김영두(金英斗)에게 7만원, 백남구(白南九)에게 1만원, 이용하(李容河)에게 8천원, 채선묵에게 6천원, 김혁중(金赫中)에게 2천 5백원, 임학선(林學先)에게 3천원을 모금하였다. 이렇게 모은 치성금은 독립정부가 수립될 때 쓸 자금이라며 전북 김제군 만경면(萬頃面) 대동리(大東里)에 있는 김공칠(金珙七)의 집 안 땅에 묻어 두었다. 1921년 초 태을교는 각 군에 포장(布長)을 임명하기 위해 각도에 임시정리(臨時正理) 1명씩을 선정하였다. 이때 평안도를 담당하는 임시정리로 파견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를 새왕조개창설 혹은 천자등극설을 빌미로 매관매직을 하기 위한 사기행각 혹은 독립운동 적립금 모금을 위한 활동이라며 예의주시하였다. 결국 황해도에 파견된 채선묵(蔡善默)과 함께 붙잡혔다. 이때 1919년에 모금한 치성금(致誠金)을 모두 압수당하였다. 1922년 5월 17일 공주지방법원의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에 검사 측은 즉각 항소하였고, 1923년 4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본래 판결을 취소하고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1929년에는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청 검사국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50여 명의 교인과 함께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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