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金炯洙1905. 2. 5 ~ 1988. 8.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우리계(宇利契)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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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3) 1905년 2월 5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제주면 이도리(二徒里)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에는 삼도리(三徒里)에 거주하였다. 김홍명(金弘明)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고병희(高秉禧)·조대수(趙大秀)·강기찬(姜箕贊)과 함께 1927년 4월 9일 밤 삼도리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였다. 무정부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독서회는 현재의 사회 조직을 파괴하고 지배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며, 개인에게 절대적인 자유가 있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이상으로 삼았던 조직이었다. 동지들과 결사를 통해 무정부주의의 연구와 선전을 하여 무정부주의자의 규합을 계획하였으며, 신사회 건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자 하였다. 국체를 변혁하고 이상 사회를 실현할 목적으로 고병희의 제안으로 각자 30전을 내어 무정부주의에 관한 서적과 기타 간행물을 구입하였고, 매월 1회 만나 공동 연구를 하여 서서히 무정부주의자들을 모으기로 구체적인 활동 사항을 결의하였다. 1927년 10월에는 소비조합을 결성하여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어서 1929년 5월에는 회원들과 함께 우리계(宇利契)를 조직하여, 우의돈목(友誼敦睦), 애경상문(哀慶相問), 생활향상을 표방하면서 무정부주의적 이상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두었다. 제주도라는 전통사회에 바탕을 두고 무정부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도청·은행·금융조합·학교 등의 직원·교원과 도내 유지들이 계원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1929년 9월에 도내 각 마을에 야학을 설립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무정부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등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이 같은 사실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1930년 7월에 붙잡혔다. 같은 해 12월 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고, 1931년 7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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