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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亨錫

亨錫

187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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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亨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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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高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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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애국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7년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토성면(土成面) 아야진리(我也津里)에서 태어났다. 토성면은 본래 간성군(杆城郡)에 속하였다가 1919년 양양군(襄陽郡)으로 편입되었고, 1963년 고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자료에는 당시 행정구역상 ‘양양’ 사람으로 기재되어 있다. 향리에서 어업에 종사하며 살아가던 중, 1919년 10월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 강원도단(江原道團) 양양군단(襄陽郡團)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국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선전과 통신 연락, 그리고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연통부(聯通府)가 설치되지 못한 중부 이남 지역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철원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대한독립애국단은 일명 철원애국단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19년 8월 철원에서 조직된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은 원주·평창·강릉 등을 거쳐 영동지역으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는데, 특히 양양군단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양양군단은 철원과 양양에서 감리교 목사 활동을 하던 김영학(金永鶴)의 주도로 조직되어 10월 초부터 비밀리에 단원을 모집하였다. 1919년 10월 초 군단장 김영학으로부터 애국단 결성 취지를 듣고 독립운동 자금 마련과 단원 모집에 적극 나섰다. 특히 양양군단이 뜻있는 젊은이들을 모으는 데 양양의 토박이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근옥(李根玉) 등을 만난 자리에서 애국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할 청년을 모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취지를 분명히 전달하고, 한편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에도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토성면에 거주하던 이들은 이후 서울과 중국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0월 하순에는 청년 단원의 임시정부 파견을 실제로 추진하였다. 10월 30일경 양양군단 단원들이 철원의 강원도단을 거쳐 서울로 이동할 때, 이에 대한 연락과 자금 모금 등에 힘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0년 1월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 조직이 일제 경찰에 의해 파악되면서 붙잡혔다.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증회,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 공갈 취재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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