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海得
海得1924. 1. 15 ~ 1984. 6.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토교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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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4년 1월 15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각북면(角北面) 우산리(牛山里)에서 태어났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을 당하여 중국 난징(南京)지구에 배치되었다가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1943년 10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평양 제39여단 제42연대에 입대한 후 중국 난징지구로 이동해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제6213부대에 배속되었다. 일제에 강제로 학도지원병(學徒志願兵)이나 징병으로 일본군에 배치된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전 활동에 영향을 받아, 1944년 5월 일본군을 탈출하였다. 중국군 유격대에 합류해 활동하다가, 1945년 4월 충칭(重慶)에 도착하여 한국광복군 토교대(土橋隊)에 입대하였다. 토교대는 충칭(重慶)에서 남쪽으로 20킬로 떨어진 토교(土橋)에 설치되어 일종 보충대 역할을 하였다. 토교에는 주로 임시정부 관련 인사들의 가족들이 거처하고 있었으며, 당시 일본군을 탈출한 한적사병(韓籍士兵)과 기존 광복군 대원들에게 초모된 한인 청년 등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부서로 배치받기 전 임시로 이곳에서 대기하였다. 토교대는 각 시기별로 다르게 운영되었다. 우선 1944년 3~4월경 30여 명의 한인청년들로 편성된 토교대에서는 3개의 반으로 나누어 정훈교육과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군사 훈련과 함께 역사학과 정치학, 군사학 등의 교육과 훈련이 실시되었으며, 시험을 거쳐 일정한 수준을 갖춘 대원을 양성하였다. 이렇게 양성된 병사들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요원이나 임시정부 경위대, 그리고 광복군 각 지대로 배치되어 활동하였다. 두번째로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 출신 51명이 충칭에 도착한 후 편성된 토교대이다. 이들은 이미 소위로 임관된 이들이기에 별다른 교육훈련을 실시하지 않았다. 세번째로 일본군을 탈출했다가 중국군의 포로가 된 한적사병들의 석방을 계기로 토교대가 다시 편성되었다. 이들은 1945년 5월 발효된 '원조한국광복군판법'에 의거해 임시정부 측에 인도되었다. 토교대 입대 후 교육 훈련을 받은 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警衛隊)에 배속되었다. 경위대 대원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경비와 임시정부 고위 요원의 호위 및 보호를 주로 맡았다. 기타 연락과 비서 업무 등 부수적인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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