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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根

昌根

1902. 1. 26 ~ 1938.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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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昌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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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국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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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병인의용대
  • · 맹혈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서울 신교동(新橋洞) 출신이다. 이명으로 김쇠동(金釗同)을 사용하였다. 명신학교(明新學校) 재학 중 부친이 별세하여 중퇴하였다. 1917년부터 이왕직(李王職) 양악대(洋樂隊)에 근무하다가, 1921년 양악대 해산 이후 경성전기회사 전차 차장, 인쇄 직공, 상점 점원 등을 전전하였다. 1923년 봄부터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조선연예단(朝鮮演藝團)의 악장(樂長)이 되어 국내 각지를 순회하였다. 1925년 가을 만주 안둥현(安東縣), 현 중국 단둥(丹東)에서 연예단을 이탈하고, 다렌(大連)을 거쳐 10월에 상하이(上海)로 갔다. 이후 교민단에서 경영하는 인성학교(仁成學校)의 사환으로 일하다가, 3.1공학교(三一公學校)의 음악교사가 되었다. 1926년 상하이에서 병인의용대(丙寅義兵隊)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6년 1월 결성된 병인의용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옹호, 일제 침략시설 파괴, 침략 원흉과 부일배 응징 등을 주요 목표로 삼고 의열투쟁 형태로 활동을 펼쳤다. 1926년 3월 최병선(崔炳善), 일명 최동선(崔東善)·장영환(張英煥)·김광선(金光善) 등과 함께 ‘행동대원’이 되어 상하이공산당청년동맹을 찾아가 해산 명령서를 전달하고 강제 해산시켰다. 또 한인 상인을 위협하여 금품을 강탈하던 계경수(桂澋洙)·이중호(李重浩) 등을 체포하여 상하이에서 추방시켰다. 병인의용대 대원 최병선·장영환이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 붙잡히자, 1926년 4월 6일 프랑스 조계 비동서로(飛東西路)에 있는 모 중국집에서 강창제(姜昌濟)·이성구(李成九)·김광선(金光善) 등과 일본총영사관 폭파를 결의하였다. 4월 8일 김광선과 폭탄 1개씩 지니고, 권총을 가진 이성구와 함께 일본총영사관 뒷길을 자동차로 달리면서 폭탄을 던졌다. 일본총영사관 벽이 파괴되고 유리창이 파손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 후 병인의용대는 중국인으로 변장하여 일본총영사관을 비롯하여 일제 침략기관에 폭탄을 투척·파괴하며, 각 방면에 대원을 잠복시켜 일본 탐정을 숙청한다는 등의 특무공작 강화 방안을 마련하였다. 당시 일본 경찰은 병인의용대를 상하이에 있던 한인독립운동 단체 중에서 ‘가장 흉폭한 단체’라고 평가하며, 프랑스 영사에게 이들의 체포 협조 요청을 취하기도 하였다. 1935년 11월 부일배인 이태서(李泰瑞)라는 자가 “김창근과 김창근의 장인인 옥성빈(玉成彬)이 일제의 밀정으로 일본총영사관으로부터 돈을 받고 임시정부 요인 김구(金九)를 잡으려 한다”고 모함하고 다닌다는 말을 김동우로부터 듣고, 프랑스 조계 하비로(霞飛路)에 있는 이태서(李泰瑞)의 집을 찾아가 사살하였다. 같은 시기 프랑스 조계에 거주 중인 12명 이상의 부유한 한인들에게 자금을 내라는 협박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 무렵 한인 밀정을 다수 포섭하여 활동하고 있던 상하이일본영사관 소속 후지이(藤井) 경부보를 폭살할 계획을 세우고, 1935년 12월 중순 후지이가 난징(南京) 방면으로 출장 간 사이에 상하이 공동조계에 있는 후지이의 관사 정문에 폭탄을 장치하였다. 12월 24일 출장에서 돌아오는 후지이를 폭살시키려는 계획이었으나, 폭탄이 불발됨으로써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1936년 초 오면직(吳冕稙)·유형석(柳瀅錫)·한도원(韓道源)등과 같이 맹혈단(猛血團)을 조직하고, “우리들은 남경에 있는 야심 정치가들처럼 타락하지 않고, 혁명도덕에 비추어 행동하겠다”고 서약하였다. 그리하여 운동자금 확보를 위해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사는 조상섭(趙尙燮)·이갑성(李甲成)·박동언(朴東彦)·이철진(李鐵鎭)·박진(朴震)·정찬성(鄭燦星)·김하종(金河鍾)·황복용(黃福用)·최영택(崔泳澤) 등 자금력이 있는 한인들에게 수차례 협박장을 보냈다. 그러던 중 2월 22일 장천민(張天民), 일명 유형석이 상하이 정안사로에 있는 장두철(張斗徹)의 집에서 모금 활동을 벌이다가 프랑스 조계 공부국에 붙잡혀 일본 경찰에 인계되었다. 이로 인해 3월 5일 이후 다른 단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36년 6월 29일 밤 임신 8개월의 아내와 5살·3살 아들을 데리고 한도원(韓道源)과 함께 상하이로부터 압송되어 인천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2일 아침 황해도경찰부로 압송되었다. 1937년 4월 1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고등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으며, 1938년 5월 16일 평양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한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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