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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갑

金昌甲

1924. 2. 13 ~ 1999.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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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창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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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창성(昌成)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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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토교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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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4년 2월 13일 평안북도 창성(昌成)에서 태어났다. 1940년대 중반 한국광복군 토교대 요원으로 항일 투쟁에 나섰다. 1945년 4월 충칭(重慶)에서 남쪽으로 20킬로 떨어진 토교(土橋)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일종 보충대 역할을 하는 조직이었다. 토교에는 주로 임시정부 관련 인사들의 가족들이 거처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군을 탈출한 한적사병(韓籍士兵)들,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에서 광복군 간부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한 광복군 장교들, 초모된 한인 청년들도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부서로 배치받기 전 임시로 이곳에서 대기하였는데, 이 당시 토교대(土橋隊)에 합류하였다. 토교대는 각 시기별로 다르게 운영되었다. 우선 1944년 3~4월경 30여 명의 한인청년들로 편성된 토교대에서는 3개의 반으로 나누어 정훈교육과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때는 군사 훈련과 함께 역사학과 정치학, 군사학 등의 교육과 훈련이 실시되었으며, 매분기 검정시험을 거쳐 일정한 수준을 갖춘 대원을 양성하였다. 이렇게 양성된 병사들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요원이나 임시정부 경위대, 그리고 광복군 각 지대로 배치되어 활동하였다. 두번째로 한국광복군훈련반 출신 51명이 충칭에 도착한 후 편성되었다. 이때는 일종의 보충대 성격을 갖고 이미 소위로 임관된 이들이기에 별다른 교육훈련을 실시하지 않았다. 세번째로 일본군을 탈출했다가 중국군의 포로가 된 한적사병들이 석방하면서 토교대가 다시 편성되었다. 이들은 1945년 5월 발효된 '원조한국광복군판법'에 의거해 임시정부 측에 인도되었다. 토교대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 배치되어 경비와 임시정부 요인 호위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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