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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돌

金在乭

미상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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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돌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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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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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1882년 제주(濟州)에서 태어났다. 호적상의 이름은 김문우(金文祐)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명(兒名)인 김재돌(金在乭)로 불렸으며 1909년 거의(擧義) 당시에도 아명을 사용했다. 1907년 정미늑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서울과 원주(原州) 군인들의 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의 항쟁이 전개되었다. 제주 출신의 고사훈(高仕訓)은 1907년 말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기삼연(奇參衍)과 긴밀히 연대하면서 제주에서의 봉기를 준비하다가 1909년 2월 25일(음력 2월 6일) 제주군 중면(中面) 이도리(二徒里) 광양동(廣陽洞)의 조인관(趙仁官)의 집에서 거의를 위한 모임을 열었다. 이 때 김만석(金萬石)·양남석(梁南錫)·이중심(李中心)·한영근(韓永根) 등 9명과 함께 참여하여 거사 일자를 1909년 3월 3일(음력 2월 12일), 장소는 관덕정(觀德亭)으로 정하였다. 같은 날 양남석·조인관 등과 함께 대정군(大靜郡)(1914년 제주군 통합, 현 서귀포시 서부)으로 출발하여 모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고사훈과 이중심 등은 제주도민들에게 돌릴 격문(檄文)과 통문(通文)을 작성하였다. 대정군에서 모집한 의병과 함께 제주성에 진군하면 이중심·김석윤·노상옥 등이 제주성 내에서 호응하여 일본군을 격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거병을 이틀 앞둔 1909년 3월 1일 의병 활동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제주경찰서 대정주재소(大靜駐在所)가 순사들을 급파하여 대정군 중면(中面) 광청리(光淸里)의 민가를 습격, 고승천과 김만석을 체포하였다. 이때 조인관·양남석·노상옥(盧尙王) 등의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을 피하여 오랜 기간 각기 다른 곳에 은신하여 체포를 면할 수 있었다. 고승천과 김만석은 3월 4일 서귀포주재소로 이송 중에 경찰에게 사살, 사망하였다. 이후 행적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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