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화
金鍾和1881. 5. 30 ~ 1956. 12.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 가야리(佳野里) 출신으로 1881년 5월 30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희숙(熙叔)이다.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 참여해 일본군의 동향을 파악하고 군수지원을 담당하였다. 1907년 봄부터 의병 봉기를 위해 옛 동지들과 대한제국 진위대(鎭衛隊) 안동분견대(安東分遣隊) 출신의 백남규(白南奎) 등 신식 군인들을 규합하고 있던 이강년 의병장은 1907년 8월 5일 강원도의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가 봉기하자 충북 제천군(堤川郡)에서 의병을 재정비하여 봉기하였다. 이어 민긍호(閔肯鎬) 등 여러 의병장들과 연합하여 천남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강년 의병부대는 이어서 충주부(忠州府)의 읍성 공략에 들어갔다. 충주성 공략은 민긍호 의병부대, 조동진 의병부대 등과 연합하여 추진된 작전이었지만 이들 부대가 일본군에 의해 진입이 차단되면서 이강년 의병부대 단독으로 진행되었다. 1907년 8월 23일 전개한 충주성 공격에서 충주 북문 밖 5리 까지 진출하여 접전을 벌였으나 일본군이 성 밖까지 나와서 역습하는 바람에 후퇴하고 말았다. 이후 제천군을 거쳐 경북 예천군, 문경군(聞慶郡)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강년의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좌종사부(坐從事部)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거주지에 있으면서 일본군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의병소모, 그리고 식량과 무기, 탄약 등 군수지원 등을 담당하였다. 영남으로 이동한 이강년 의병부대의 좌종사부 소속으로 문경에서 문경의 보좌원, 우편국원, 일본인 상인들과 접전하고, 일본인 거주 민가와 우편국을 소각하였다. 또 갈평(葛坪)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퇴각하는 일본군의 총검, 탄환, 투구, 양식, 기구 등을 수색하여 획득하였다. 이후 이강년 의병부대가 죽령(竹嶺)일대에 주둔하면서 죽령을 차단하자 일본군의 공세가 강화되었다. 이런 일본군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보고하였는데, 11월 2일에는 “일본군이 죽령을 넘는다”는 보고를 하여 일본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격퇴할 수 있었다. 이후 이강년 의병부대는 충청, 경상, 강원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13도창의군의 일원으로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서울 인근까지 진격한 진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주요 의병장이 체포되거나 사망하면서 1908년 5월 다시 영남으로 이동하였다. 영남에 들어온 이강년 의병부대는 일본군과 안동부 서벽(西壁) 등지에서 치열한 교전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일본군과의 전투에 대응할 수 있는 각종 첩보를 입수하여 보고하는 활동을 그 해 6월 이강년 의병부대가 해산할 때까지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심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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