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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金栽瀅

1863. 12. 2 ~ 192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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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형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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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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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고사훈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제주도(濟州道) 출신으로 1863년 12월 2일 태어났다. 구우면(舊右面) 두모리(頭毛里)의 이장(里長)을 지냈다. 이명은 김철연(金哲鍊)이다. 1909년 2월 고사훈(高仕訓)·(高承天)이 의병 봉기를 촉구하는 격문을 돌리자 이에 호응하여 마을 주민을 조직하여 거병하고자 계획하였다. 제주 출신인 고사훈은 1908년경 전남 장성군(長城郡) 출신의 의병장 기우만(奇宇萬)·기삼연(奇參衍) 등과 긴밀히 연락하면서 제주와 전남 광양군(光陽郡) 지역에서 의병 투쟁을 위한 무기들을 은밀히 마련하여 지원하는 한편, 김석윤(金錫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후 마침내 제주 전 지역에 걸친 대대적 봉기를 계획하고 1909년 2월 10일 의병 동지 김만석(金萬石)과 함께 제주 각 곳에 사발통문을 배포하였다. 당시 구우면 두모리의 이장으로 고사훈 등과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었으나 “왜인을 때려 죽여 백성을 편안케 할지라(打殺倭人以安其民)”, “이제 의병을 모아 만인이 우리 조선의 옛 제도를 되찾을지라(今聚義兵萬人復我朝鮮舊制)”라는 두 통의 격문을 읽고 호응하였다. 1909년 2월 28일과 3월 1일 이틀에 걸쳐 마을 주민 227명을 소집하여 사발통문을 낭독한 뒤, 주민들을 3명에서 11명씩 나누어 조직하고 41명의 통수(統首)가 각각 지휘하게 하였으며, 그 위에 다시 6명의 도통장(都統將)을 두었다. 이렇게 주민을 분대 단위로 조직하고 그 지휘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통수기(統首記)」를 작성하여 의장소(義將所)에 보고하는 등 체계적으로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격문을 돌린 고사훈과 김만석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됨에 따라 잠시 거사를 미루었다. 그러나 두모리의 정황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제주경찰서는 세 명의 순사를 파견하여 미처 거병하지 못하고 3월 8일에 붙잡혔다. 1909년 4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내란미수죄로 유형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달 14일에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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