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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金在燮

187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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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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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井邑)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정읍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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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동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서일면(西一面) 주곡리(舟谷里) 출신이다. 190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4세로, 187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7월 정읍 내장산(內藏山)에서 김동신(金東臣)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포수(砲手)로서 항일 무장 투쟁에 나섰다. 의병에 가담한 1907년은 소위 정미의병이 일어난 해였다. 1907년 6월 광무황제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것을 빌미로 일제는 융희황제로의 양위를 강제하고, 같은 해 7월 24일에는 친일내각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을사늑약 이래의 국권 침탈을 더욱 심화시켰다. 8월 1일부터 3일에 걸쳐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의병 항쟁이 다시 격화되었다. 이에 김동신이 내장산의 백양사(白羊寺)에서 통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자 즉각 이에 호응하여 일제에 대한 무장 투쟁에 나섰다. 1907년 9월 10일에 약 80여 명의 김동신 의병들과 함께 순창(淳昌)의 우편취급소와 경무고문분파소(警務顧問分派所)에 대한 습격에 나섰다. 이때 우편취급소를 공격하여 두 명의 일본인을 처단하고, 그곳의 관물을 군자금으로 입수하였다. 1908년 6월 8일 대전에서 의병장 김동신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김동신 의병부대가 더 이상 항일투쟁에 나서지 못하게 되자 다시 김영백(金永伯)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지속하였다. 김영백 부대에서는 무주군(茂朱郡)·용담군(龍潭郡)·무안군(務安郡)·태인군(泰仁郡) 등 각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헌병들을 상대로 치열한 교전을 벌이다가 1909년 6월 27일 정읍에서 고부경찰서 순사대에 붙잡혔다. 이러한 일로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모살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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