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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金在根

189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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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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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흥덕(興德)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흥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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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영백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전라북도(全羅北道) 흥덕군(興德郡, 현 고창군) 부회면(府會面) 염수리(鹽水里) 출신이다. 1909년 당시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9세로, 1891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9년 초 김영백(金永伯)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당시는 정미의병의 활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1907년 7월 24일 일제는 이완용의 친일 내각과 정미늑약을 맺어 한국에 대한 통감의 내정 간섭을 한층 심화하는 동시에, 시위대(侍衛隊)와 진위대(鎮衛隊)를 해산시켜 대한제국을 무장 해제시켰다. 이에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유생·포수·농민·광부 등 다양한 계층이 일제에 항거하는 의병 활동에 나섰다. 이때 가담한 의병부대의 대장이었던 김영백 역시 1907년 10월 전남 장성군(長城郡)에서 거병하여 약 2백 정의 총으로 무장한 1천여 명의 의병들을 지휘하였다. 김영백 의병부대에서 의병 부대의 유지를 위한 식량, 의복, 무기와 자금 등 군수 조달의 역할을 주로 맡았다. 1909년 4월에 두 차례 동료 의병 50여 명과 함께 전북 흥덕군과 전남 일대에서 엽전 25냥과 엽전 5냥을 징발하였다. 이러한 군수품 모집 활동을 벌이던 가운데 1909년 11월 30일 동료 의병 최유복(崔有福)과 함께 고부경찰서 순사대에 의해 붙잡혔다. 1909년 12월 8일에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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