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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술

金子述

187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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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자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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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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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양상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출신으로 자료에 따르면 187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광주군 오치면(梧峙面) 삼각리(三角里)에서 주막을 운영하다가 양상기(梁相基)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양상기 의병장은 진위대에서 병사로 복무하다가 1907년 대한제국 군대 강제해산 이후 광주경찰서의 순사가 되었으나, 의병장인 아버지 양진여(梁振汝)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이 발각되어 1908년 4월 23일 파면되었다. 이후 양상기는 약 80여 명의 의병들을 조직하여 무장 항일 투쟁에 나서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1909년 4월 담양군(潭陽郡)에서 패전하며 체포되고 말았다. 양상기 휘하의 박동근(朴東根)·김일수(金日洙)·김만리(金萬里) 등은 해산하지 않고 의병활동을 지속하였다. 이때 주막을 운영하면서 1909년 3월에서 6월 사이에 걸쳐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연락을 매개해 주는 등 의병들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1909년 6월 21일 박동근이 담양군 우치면(牛峙面) 신촌(新村)에 올 것이라는 밀고를 받은 광주경찰서에서 순사 가사마 산난(笠間三男) 외 4명을 파견하여 6월 22일 오전 4시경 박동근을 체포하였다. 이후 박동근을 연행하는 순사 일행이 은신처였던 주막에 이르자, 황급히 온돌방의 자리 밑에 숨겨 두었던 서신을 아내에게 주어 다른 의병들에게 연락을 시도하였지만 발각되어 붙잡히고 말았다. 1909년 11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내란·모살·강도·상인죄(傷人罪)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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