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남
金一男188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정일국 의병부대
- · 이용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4)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내동면(內東面) 백석동(白石洞, 현 정읍시 부전동 백석마을 일대)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21세로 188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김일남(金一南)으로도 불렸다. 1907년을 전후하여 일제의 국권침탈이 심화되고,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까지 이어지자 호남 지역에서 의병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일제의 의병 탄압이 강화되면서 점차 의병부대는 소규모로 분산되었고, 활동 역시 위축되었다. 1907년 9월 호남의 대표적 의병장인 김동신(金東臣)과 함께 내장산(內藏山)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한 의병장 정일국(鄭一國) 역시 1909년 무렵에는 30여 명의 소규모 인원을 이끌고 유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1909년 3월 정일국의 의병부대가 고향인 정읍과 가까운 전북 태인군(泰仁郡)과 고부군(古阜郡) 등지에서 활동하자 여기에 합류하였다. 특히, 의병장인 정일국의 짐을 짊어지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3월 10일까지 군자금 모금 등의 의병 활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정일국이 부대원인 최판동(崔判東), 선봉장(先鋒將) 김장명(金將明) 등 2~30명과 함께 순창군(淳昌郡)과 고부군 일대에서 주로 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같은 해 8월 초까지 의병 활동 가담여부가 확인되지 않다가, 8월 5일 이용서(李用西)가 이끄는 의병부대에 다시 합류하였다. 이용서는 1909년 3월 30여 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전북 고부군·태인군·부안군(扶安郡)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었다. 특히 전북 정읍 출신인 이용서는 8월 이후 그를 포함한 12명의 부대원과 함께 총 8정과 칼 1자루를 지니고, 순창군 등에서 활동을 이어 나갔다. 이때도 이용서의 짐을 짊어지고, 의병 활동에 동참하였다. 당시 21세의 청년이었기 때문에 의병장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10일까지 전개된 일제의 대대적인 호남 의병 탄압작전인 ‘남한대토벌작전’이 시작되면서 많은 의병이 검거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9월 19일 의병을 탄압하던 일본군에 의해 붙잡힌 것으로 보인다. 1909년 11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0년 8월 대사령에 의해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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