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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義明

義明

1924. 10. 24 ~ 195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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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義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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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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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3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3) 1924년 10월 24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각남면(角南面) 사리(沙里)에서 태어났다. 김창환(金昌煥)이라는 이명이 있다. 1937년 풍각공립보통학교(風角公立普通學校, 현 풍각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43년 3월 중국 톈진(天津)에서 한국광복군 화베이(華北)지구 공작 책임자인 지득성(智得成)에게 전방공작원 임무를 받고, 화베이 일대에서 한인 청년 초모활동에 종사하였다. 1944년 10월 베이징(北京)과 톈진지구에서 전방공작원으로 활동하던 김광언(金光彦)·이정수(李廷秀)·이윤하(李允夏)등과 함께, 광복군 징모 제6분처 화중(華中) 특파공작대 윤창호(尹昌浩)의 인솔 하에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으로 이동하였다. 징모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에서 광복군 병력 증대를 위해 설치한 모병기구였다. 1942년 2월에 이르기까지 총 5개 분처가 설치되었으며, 그 중 하나가 푸양에 본부를 둔 징모 제6분처였다. 푸양을 거점으로 한 징모 제6분처는 쉬저우(徐州)·구이더(歸德)·지난(濟南)·칭다오(靑島) 등지에서 일본군을 탈출한 한적 사병 등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1월에 한국광복군 제3지대(당시 징모 제6분처)에 편입되어 본부요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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