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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鍾

永鍾

1915. 10. 13 ~ 1974.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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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永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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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삭주(朔州)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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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1) 1915년 10월 13일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郡) 양산면(兩山面) 용산동(龍山洞)에서 태어났다. 중국 난징(南京)에서 한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광복군에 입대해 활동하였다. 중국으로 건너가 생활하다가 1943년 8월 난징(南京)에서 중앙대학(中央大學)의 한국인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지하연락망을 구축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던 한족동맹(韓族同盟)의 지도자 이일범(李一凡)을 만나 공작대원이 되었다. 한족동맹원으로 중국국민당 소속 정보원들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려는 한국인들의 적지 탈출을 돕고,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였다.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위치 파악, 일본군 기밀문서 탈취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헌병대와 영사관경찰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짐에 따라 난징을 탈출하였다. 1945년 7월 한국광복군 징모(徵募) 제3분처를 통해 정식으로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징모 제3분처는 한국광복군의 병력 증대를 위해 별도 기구로 설치한 5개 징모처 중 하나였다. 주로 항일선전 및 초모공작을 전개하였다. 이에 지하공작과 초모활동(招募活動)에 참여하던 중, 1945년 8월 광복을 맞았다. 광복 이후에는 광복군 소속으로서 한인 교포들의 신변 보호와 귀국 절차를 돕다가 1946년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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