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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영

宋武英

1896 ~ 1930.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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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무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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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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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재만조선공산주의자단체
  • ·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대료리(大療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30년 당시 35세인 것으로 보아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송재철(宋在喆)을 사용하였이다.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 운동에 참여하였다. 중국 광둥(廣東)에서 황푸군관학교(黃浦軍官學校)를 졸업하고 소련으로 넘어가 모스크바군관학교를 나왔다. 1920년대 중반 이후 북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룽징(龍井)에서 재만조선공산주의자단체(在滿朝鮮共産主義者團體)가 결성되자 산하 공산청년회의 간부가 되었다. 이 단체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滿洲總局)에 대항하여 상해파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고 책임비서는 주건(朱建), 공산청년회는 김희창(金希昌)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북간도 각 지구에 야체이카를 두었다. 1929년 3월 지린성(吉林省) 둔화현(敦化縣)에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 발기회 때 참가하였다. 이 회합에서 안상훈(安相勳) 등과 함께 국내로 들어가 코민테른의 1928년 「12월테제」 원칙에 따라 조선공산당을 재조직할 당재건 건설동맹 준비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그 해 5월 무렵 국내로 들어왔다.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과 공산청년회 재건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9년 6월 초순 종로경찰서에 의해 사건이 발각되어 관계자에 대한 체포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몸을 피하였으나, 결국 같은 해 6월 16일 평양에서 붙잡혔다. 곧바로 종로경찰서에 압송되었으며,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진행 중이던 1930년 5월 26일 결핵이 심해져 보석을 허가받고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러나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7월 2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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