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문우석

文禹錫

1893. 6. 6 ~ 1953. 2. 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문우석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3년 6월 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마령동(馬嶺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자는 제민(濟民), 호는 송음(松陰)이다. 이명으로 문남룡(文南龍)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26세였으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안동군 임동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안동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10,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만세시위는 면장과 면서기들의 주도하에 예안면(禮安面)에서 3월 17일에 일어났다. 3월 18일에는 안동면(安東面)에서 기독교계와 유림계가 함께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일어나 새벽까지 2,5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3월 18일에 안동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곧바로 안동 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3월 21일에는 임동면·임하면(臨河面)·길안면(吉安面)·일직면(一直面)에서 만세시위가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3월 21일에 일어난 임동면 시위는 3월 3월에 열린 고종 장례식에 참석했던 류동시(柳東蓍)를 비롯한 지역 유림들이 준비하였다. 하지만 오후 1시쯤 먼저 기독교인 10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분위기를 고취하였다. 오후 2시쯤 유림계를 대표한 10여 명의 주도자들이 시장 가운데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우치다(內田) 순사가 독립선언식을 제지하다가 역부족을 느끼고 순사주재소로 몸을 피하자 500여 명의 시위대는 곧바로 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날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주재소로 진입하는 데 앞장섰다. 시위대는 주재소에서 무기를 빼앗아 우물에 버리고 우치다 순사와 권택석(權泰奭) 순사보를 구타하였다. 오후 5시에는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로 몰려가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였다. 결국 안동경찰서가 급파한 경찰과 군인이 대대적인 체포에 나서면서 붙잡혔다. 그 해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건조물 손괴, 가택 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형량이 가중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