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심연
文心淵185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성천군 성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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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 성천면(成川面) 마전리(麻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62세로 1858년 생으로 추정되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4일 성천군 성천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평안남도 동남부에 위치한 성천군은 동쪽은 양덕군(陽德郡), 동남쪽은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서쪽은 강동군(江東郡), 남쪽은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북쪽은 순천군(順川郡)과 맹산군(孟山郡)에 접하고 있다. 성천의 만세시위는 천도교계에 의해 주도되었다. 천도교 성천대교구장인 이돈하(李燉夏)는 1919년 2월 하순 평양에서 열린 대교구장회의에 참석하여 천도교중앙총부가 김상열(金商說)을 통해 보낸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이돈하는 3월 1일에 성천으로 돌아와 천도교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4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한 각 면 천도교인들에게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4일 오전 11시 천도교 성천대교구 앞에는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4,000명이 넘는 군중이 모였다. 이때 거행된 독립선언식에 참여하였다. 주도자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부른 후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거리로 나선 시위대가 헌병대로 몰려가자 헌병과 헌병보조원들이 총을 쏘아 그 자리에서만 28명이 사망하였다. 일본인 헌병대장인 마사이케(政池覺造)가 사격을 지휘하다가 헌병에 쏜 총에 맞아 몇 시간 후 죽는 일도 일어났다. 헌병과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500명이 넘었다. 이날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기소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다시 “본인은 조선 민족 독립의 사상이 주야로 절박하였다”고 당당히 밝히고 보안법 위반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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