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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삼언

文三彦

1880. 8. 2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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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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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용천(龍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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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용천군 양하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80년 8월 20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양서면(楊西面) 동평동(東平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가, 3월 4일 양하면(楊下面)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평안북도 서쪽 끝에 위치한 용천군은 동남쪽은 철산군(鐵山郡), 동북쪽은 신의주시(新義州市)·의주군(義州郡), 서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의 랴오닝성(遼寧省) 안둥현(安東縣)과 마주보고 있다. 서남쪽은 서해와 접하고 있다. 용천군에서 제일 먼저 만세시위를 벌인 곳은 양하면(楊下面) 양시(楊市)로 1919년 3월 3일 밤부터 주민들이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만세를 불렀다. 양시의 만세시위는 최영선(崔永善)·공수(孔洙) 등 10여 명의 주도하에 시남동(市南洞)에서 시작되었다. 5,000여 명의 군중은 만세를 부르며 시남동을 출발하여 태극기와 독립기를 흔들며 양시의 중심부로 모여들었다. 이때 농산물을 팔러 양시에 갔다가 만세시위를 보고 동참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던 중 시위 주도자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파리강화회의의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하여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한다는 전보가 조선총독부에 도착하였다”고 주장하는 연설을 들었다. 이를 듣고 행진 도중 주변 사람들에게 같은 사실을 전하였다. 그러나 김건주(金健柱) 목사로부터 그러한 사실이 없음을 듣고 귀가하였다. 양시에서는 밤 9시에도 600여 명의 군중이 다시 제등(提燈) 행진을 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다음날인 3월 4일 양시에서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던 주민들과 함께 붙잡혔다.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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