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석
文道錫1882. 2. 5 ~ 1968. 8.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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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2년 2월 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마령리(馬領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자는 성오(聖吾), 호는 국사(菊史)이다. 이명으로 문제성(文濟聖)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1만여 명이 참가하였고, 3월 17일부터 23일까지가 절정기였다. 안동군 19개면 중에서 11군데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주로 장날에 장터를 이용하였다. 임동면 시위는 3월 3월에 열린 고종 장례식에 참석했던 류동시(柳東蓍)가 돌아오면서 준비가 시작되었다. 주도자들은 3월 15일 편항시장(鞭巷市場) 공동 타작장에 모여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3월 21일 오후 1시쯤 편향시장에서 기독교인 1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가 시작되었고, 오후 2시쯤 시장 가운데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시위대에 합류하여 독립선언식을 마친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향하였다. 시위대는 주재소로 들어가 무기를 빼앗고 서류들을 파기하고 경찰을 구타하였다. 이때 선두에서 주재소 숙소 안에 들어가 기물을 훼손하였다. 시위대는 오후 5시경 면사무소로 몰려가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다음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해산하였다. 이날 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주재소 숙소 안에 침입하여 기물을 훼손하였다. 안동경찰서로부터 급파된 경찰과 군인이 검거에 나서면서 곧바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건조물 손괴, 가택 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을 취소, 오히려 형량이 늘어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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