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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秉相

秉相

1891. 9. 27 ~ 198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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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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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水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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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부천군 대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9월 27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음덕면(陰德面) 신남리(新南里, 현 화성시 남양읍 신남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부천군(富天郡) 대부면(大阜面, 현 안산시 대부동) 동리(東里)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초순 이후 조선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전하여 듣고, 3월 31일에 김윤규(金允圭)·홍원표(洪元杓)와 함께 대부면 영전리(營田里) 사적장(射的場)에서 만나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3월 31일 밤 11시에 부천군 대부면 동리 김윤규의 집에 모여 김윤규 소유의 포목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4월 1일 오전 3시경 김윤규·홍원표와 함께 거리로 나와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소리에 모여든 마을 주민 십수 명과 같이 마을의 주막 권도일(權道一)의 집 앞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면서 ‘조선독립만세’를 계속 외쳤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8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다시 “우리들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한 의사 발동이며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28일 ‘은사령’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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