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道元
道元1891. 11. 2 ~ 1919. 3.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괴산군 청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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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91년 11월 2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청안면(淸安面) 문당리(文塘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노도원(盧道源)·노병선(盧秉善) 등을 사용하였다. 1919년 괴산군 청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희생되었다. 1919년 3월 19일 청안면 만세시위 시도가 실패한 후 읍내리(邑內里)의 이태갑(李泰甲)·장성원(張聖源)·신강면(辛康勉)·김수백(金壽伯, 일명 金壽福)·박순옥(朴巡玉, 일명 朴來明)·함재원(咸在源) 등은 다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만세시위 날짜를 청안장터 장날인 3월 30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준비하여 비밀리에 면내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이 만세시위 취지에 공감하여 30일 청안장터로 나왔다. 오후 3시경부터 이태갑·장성원 등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면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에 시장에 나온 2,000여 명의 만세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시장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발생했다는 급보를 접한 청안주재소 순사들이 즉시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고, 만세시위의 예봉을 꺾기 위해 시위대 선두에서 있던 유웅렬(劉雄烈) 등 7명을 주재소로 끌고 갔다. 이를 시위대와 함께 지켜보다가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가서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은 이홍균(李弘均)·김종규(金鍾奎) 등을 추가로 체포하면서 위압적인 자세로 해산을 강요하였다. 이에 분노한 김명진(金明鎭)·안낙여(安落女, 일명 安落三)·임수근(林水根)·연부산(延富山)·하성근(河聖根)·김춘경(金春京)·김인준(金仁俊) 등은 “무슨 이유로 무슨 죄로 인민을 체포하는가. 바로 석방함이 마땅하다”고 일제 경찰에 고함을 치며 더욱 강력하게 석방을 요구하였다. 거듭된 석방 요구에도 일제 경찰이 불응하자, 주재소를 공격하자는 김명진의 지휘에 따라 김춘경·안낙여·연부산·하성근 등과 함께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여 시설과 기물을 파괴하였다. 대규모 군중의 격렬한 시위에 당황한 일제 경찰은 충주에서 파견된 일본군과 합세하여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로 발포하여 만세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때 일제 경찰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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