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호정
南浩定1881. 2. 4 ~ 1960. 7.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1년 2월 4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원구동(元邱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남호완(南浩完)이다.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성내동(城內洞)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해면 만세시위는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平洞) 교회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의 발의와 낙평동 교회 구세군 참위 권태원(權泰源)과 병곡면(柄谷面) 송천동(松川洞) 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들은 기독교 신자의 동원은 물론 지역 유림의 규합에도 힘썼다. 권태원은 송천동 권씨 일족을 동원하기로 하고, 정규하의 권유를 받은 권상호(權相鎬)는 창수면(蒼水面) 인량동(仁良洞)과 오촌동(梧村洞), 영해면 원구동(元邱洞) 등지의 권씨·이씨·백씨 가문을 규합하기로 하였다. 또한 권태원·정규하 등과 회합을 가진 남효직(南孝直)은 영해면 괴시동(槐市洞)의 남씨, 남여명(南汝明)은 축산면(丑山面) 하번동(下煩洞)의 박씨 가문의 규합을 분담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희락(朴羲洛)·이상화(李祥和) 등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해면 장날인 3월 18일 오후 1시, 정규하·남여명·박희락·권영조(權永祚) 등의 만세 선창으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손영세(孫永世)·김치운(金致雲)·권영만(權寧萬)·장성렬(張星烈)·김학이(金鶴伊) 등과 함께 대오를 이뤄 행진하며 시위를 펼쳤다. 시위대는 시장 부근의 영해경찰관주재소를 시작으로 영해공립보통학교, 공립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으로 몰려가 시설을 파괴하고 다수의 기물을 훼손하였다. 시위는 이튿날인 3월 19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포항 헌병대와 대구 보병 연대가 진압에 나섰고, 결국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이후 일제의 대대적 진압 때 붙잡혔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하여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그대로 유지되어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