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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순

金元順

1880. 8. 3 ~ 1936.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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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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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全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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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0년 8월 3일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加川里)에 거주하며, 원곡면·양성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원곡면에서는 1919년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원곡면사무소가 위치한 외가천리에서 지속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28일 오익삼(吳益三)과 이태호(李泰鎬)가 중심이 되어 펼친 원곡면 외가천리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원곡면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4월 1일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날 정오 경 이덕순(李德順)은 외가천리 주민들에게 당일 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를 부를 테니 저녁을 먹고 모이자고 전달하였다. 저녁이 되자 외가천리뿐만 아니라 소식을 전해들은 원곡면 각 마을 주민들도 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칠곡리(七谷里)에서 주민과 합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원곡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면사무소에 도착한 시위대는 면장 남길우와 면서기 등을 선두에 세우고 만세를 부르도록 하면서 양성면 동항리로 향하였다. 그리고 양성면으로 넘어가는 고개(현 만세고개)에서 만세운동을 격려하고 사기를 독려하는 연설을 듣고, 돌과 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뒤 동항리로 이동하였다. 한편 4월 1일 밤 9시경 양성면의 각 마을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시위대도 모두 양성면소재지인 동항리로 집결해 1,000여 명이 양성경찰관주재소 앞으로 집결해 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고 있었다. 이때 원곡면에서 시위를 마치고 이동해 온 주민들이 합류하여 시위대는 약 2,000명으로 증가하였다. 양성면과 원곡면의 연합 시위대가 주재소를 공격해 유리창·벽·물건 등을 부수자, 위협을 느낀 일본 경찰들은 도망치기도 하였다. 시위대는 주재소와 순사 숙소에 불을 지르고, 주재소 안에 있던 서류와 물품 등을 붙태웠다. 이후 시위대는 양성우편소로 이동하여 전화선을 절단하고 전봇대를 넘어뜨렸고, 시설물·전화·서류·가구 등을 부쉈다. 그리고 일본인 상인 외리여수(外里與手)의 잡화점과 융수지(隆秀知)의 집을 부수고 붙태웠다. 이어서 양성면사무소에 돌을 던지고, 문서와 집기 등을 모두 소각하였다. 4월 2일 새벽 4시경 다시 고개를 넘어 돌아간 원곡면 시위대 약 200명은 다시 원곡면사무소로 가서 공문서와 기물을 소각하고, 숙직실 등을 불태웠다. 이 일로 1919년 4월 25일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죄로 징역 2년(구류일수중 500일을 본형에 산입)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주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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