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繪洛

繪洛

미상 ~ 1896. 7. 2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繪洛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안동(安東)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안동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1) 경상북도 안동부(安東府) 서후면(西後面) 금계리(金溪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자는 현우(現于)·경승(景承)이며, 학봉 김성일의 11대 종손인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사촌 동생이다. 서산사숙(西山私塾)에서 수학하였다. 1895년 (음)11월 15일(양력, 1895년 12월 30일) 단발령이 내려졌다. 이는 1894년 청일전쟁 가운데 일본이 조선의 내정에 개입함으로써 시작된 갑오개혁과, 삼국간섭 이후 수세에 몰린 일본이 국면을 전환시키고자 1895년 말에 자행한 을미사변으로 인해 국내 전체가 요동치고 있었을때 단행된 조치였다. 이로써 전국 각지에서 유생들이 의병을 일으키게 되었고, 이를 을미의병이라 한다. 안동지역의 유생들 역시 단발령을 접한 이후 의병 봉기 논의를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1896년 1월 17일 안동 봉정사(鳳停寺)에 40~50명의 유생들이 모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다. 다음날 1천여 명이 모인 향회(鄕會)에서 1월 20일 거병할 것을 결의하였다. 1월 20일 약 1만여 명이 모였으며 권세연(權世淵)이 대장으로 선출되었다. 지휘부는 이후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권세연이 대장에서 스스로 물러나고 3월 14일 김도화(金道和)가 대장으로 선출되며 2차 안동 의병부대 지휘부가 편성되었다. 1896년 7월 안동 옹천리(甕泉里)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척후장 김진의(金鎭懿)와 금계리로 피신하였다. 그런데 7월 22일 새벽 안동부의 관군이 금계에 있던 본부인 도소(都所)에 들이닥쳤고 붙잡혀 안동부(安東府)에 들어서는 순간 사살당하여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