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愰國

愰國

1859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愰國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태인(泰仁)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태인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김황국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전라북도 태인(泰仁, 현 정읍시(井邑市)) 출신으로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5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제국 부위(副尉) 출신으로 1907년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펼쳤다.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한 이후 1907년 8월에는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시킴에 따라 의병투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항일투쟁의 규모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참가 의병의 계층 또한 유생뿐만 아니라 평민과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1908년 4월에 이르면 통감부와 한국주차일본군이 의병 탄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또한 일제는 한국주차군 사령관으로 지휘 계통을 일원화하고 병력을 증강시켰으며, 관련 내용을 국내 언론이 보도할 수 없도록 하였다. 1908년 9월까지 4,000여 명의 조선인을 헌병보조원으로 채용시켜 각 지방의 상황 파악을 용이하게 하는 가운데, 조선인끼리의 갈등을 유발시키기까지 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호남지역 의병은 여타 지역보다 더욱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하였다. 전북은 김동신(金東臣)·문태수(文泰洙)·이석용(李錫庸) 의병부대가 대표적이었다. 전남 의병은 크게 기삼연(奇參衍)·심남일(沈南一)·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로 대표되며, 세 구역으로 나누어 전개되었다. 특히 남원·구례·곡성 등의 지역에서는 기삼연·전해산(全海山)·이석용·김동신 등의 의병활동이 두드러졌다. 일본군은 이러한 의병투쟁에 대해 대탄압 작전을 전개하였다. 일제가 기록한 『조선폭도토벌지』에는 1906년 3월부터 1911년 6월까지 의병부대가 입은 피해를 사망 1만 7,779명, 부상 376명 , 포로 2,139명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기의(起義)한 이후 5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지리산을 근거로 삼아 전북 남원군(南原郡)·구례군(求禮郡)·전남 곡성군(谷城郡)·경남 함양군(咸陽郡)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유격 전술을 사용하기 용이한 지리산 등지에서 전과를 올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봉규⋮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