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서
金化瑞1862 ~ 1910. 10. 3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화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3) 경상남도 삼가군(三嘉郡, 1914년 합천군에 통합) 승지면(承旨面) 갈전동(葛田洞) 출신이다. 1910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49세로 186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김천만(金千萬)을 사용하였다. 1907년 이후 소규모 의병부대를 이끌고 항일투쟁을 펼쳤다. 1907년 8월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시작되자, 같은 해 11월부터 약 30여 명의 의병들을 규합하여 경남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해산 군인들의 무장 항쟁을 시작으로 농민, 유생, 광부, 포수 등의 각계 각층이 항일 투쟁에 합류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거병(擧兵)이 잇달았다. 이러한 시기에 1907년 11월 무렵 경남에서 심낙준(沈落俊)·오낙삼(吳落三)·김유준(金有俊)·송영수(宋永秀) 등 30여 명의 의병들로 의병부대를 구성하고 의병장이 되었다. 그리고 1908년 7월 26일 경남 함양군(咸陽郡) 모간면(毛看面), 1908년 10월 14일 경남 거창군 고제면(高梯面), 1909년 1월 8일 거창군 안의면(安義面), 1909년 3월 25일 경남 합천군(陜川郡) 을산면(乙山面) 등지에서 지역 유력자들로부터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과 각종 물자를 모집하였다. 1909년 5월 18일에는 경남 삼가군 고현면(古縣面) 시장의 상황을 정찰하기 위해 부하 3명을 파견하였다가, 김유준 등이 구류되자 야음을 틈타 시장에 총격을 가하고 방화하여 이들을 구출하였다. 하지만 1909년 7월 4일 부장(副將)이었던 심낙준 등 8명이 먼저 붙잡히면서 대장임이 밝혀졌고, 1910년 1월 27일 수배 끝에 거창경찰서 순사들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와 방화죄 등으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0년 9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1910년 10월 4일 최종 기각되고, 같은 해 10월 31일 교수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