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이
弘미상 ~ 미상
관련 단체
- · 유인석 의병부대(호좌의진)
포상 정보
- · 애족장(200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0) 생몰년이나 출신지는 알 수 없고, 이름 ‘(金弘)이’만 전해진다. 활동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자료인 『사법품보(司法稟報)』에 따르면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에서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유인석은 일제가 1895년 을미사변을 일으키고 단발령을 강행하는 등 한국의 국권을 침해하자, 문인들과 함께 1896년 초 영월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896년 1월 28일 총대장이 된 유인석은 중군장에 이춘영(李春永), 전군장에 안승우(安承禹), 후군장에 신지수(申芝秀), 선봉장에 김백선(金伯善)을 임명하는 등 부대의 편제를 갖추었다. 그리고 「격고팔도열읍(檄告八道列邑)」을 전국에 띄워, 각지에 의병항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1896년 2월 의병부대를 이끌고 제천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봉기에 호응한 의병들이 각지에서 모여들어 호좌 의병부대가 확대·개편되었다. 호좌 의병부대는 1896년 2월 충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고, 충주성을 거점으로 의병항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곧 관군과 일본군의 맹렬한 공성전에 부딪히면서 결국 같은 해 3월 충주성을 내어주고, 제천 등지에서 항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1896년 6월 10일 관군과 연합한 일본군의 총공세에 밀려 원주·충주·제천 등지에서 남은 의병을 모아 서북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유인석 의병부대는 1896년 8월 양덕(陽德)·맹산(孟山)·희천(熙川)을 지나 20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강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당시 호좌의병부대의 선발대였던 이범직(李範稷)과 후군장 신지수 등이 본진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요동으로 가서 중국의 원조를 받을 계획으로 평북 강계(江界)에 머무를 때였는데, 8월 24일 국경을 정찰하던 조승현(趙承顯)이 보낸 순검과 관군에 의해 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범직과 권기수가 살해당하였고, 26명의 의병이 생포되었으며 습격을 피해 빠져나간 8명이 추가로 평북 자성군(慈城郡)까지 추격해 온 군사들에 의해 사로잡혔다. 이때 유인석 의병부대의 종사였기 때문에 33명의 동료들과 함께 관군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이후 기총(騎摠) 이병선(李秉先)·이무선(李武先), 십장(什長) 장옥만(張玉萬), 포군(砲軍) 김명도(金明道)·박학순(朴學順)·방학연(方學連)·김순오(金順五)·황태갑(黃太甲)·안치서(安致西)·피용학(皮龍學)·박천흥(朴千興)·이춘백(李春伯)·김용길(金用吉)·방인철(方仁喆)·최덕정(崔德正), 종사 박동수(朴東洙) 등 16명의 동료들과 함께 군율에 따라 형 집행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896년 7월에서 8월 중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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